가야 역사와 문화를 재인식하기 위한 28년만의 '가야본성-칼과 현' 특별전
가야 역사와 문화를 재인식하기 위한 28년만의 '가야본성-칼과 현' 특별전
  • 황현옥 기자
  • 승인 2019.12.02 1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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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일정: 2019.12.3.~2020.3.1
전시품: 말 탄 무사모양 뿔잔(국보 275호) 등 2,600여 점(국보 2건, 보물 4건 등)
출품 기관 : 삼성미술관 리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등 31개 기관

[와이즈경제=황현옥 기자] 국립중앙박물관은 2일(월) 오후 4시에 기획전시실에서 특별전 "가야본성-칼과 현”개막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박물관에 따르면, 이번 특별전은 가야를 주제로 지난 1991년에 문을 연 “신비한 고대왕국 가야” 전시 이후 28년 만에 새롭게 개최한다.

고대 한반도 남부에서 삼국과 520여 년을 함께 한 가야는 ‘철의 나라’정도로만 알려져 있고, 여러 나라들로 나뉘어져 존재한 것으로 인식됐다.

무엇보다 호남동부지역의 가야를 새롭게 밝혀낸 것은 고고학적 발굴이 이루어낸 새로운 성과이다. 가라국(대가야)은 낙동강에서 섬진강에 이르는 여러 지역을 규합했는데, 남으로 여수 고락산성, 서로는 지리산을 넘어 장수 삼봉리와 남원 두락리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 여기에 해당한다.

남원의 운봉고원과 순천 등지에서 발견되는 가야 무덤은 가야의 여러 세력이 가라국의 편에 섰음을 말하고 있다. 새롭게 발굴한 호남동부지역의 가야 모습은 가야가 추구한 화합의 모습을 반영했다.

이 외에도 가야는 '삼국유사'가 말하는 오가야를 넘어 여러 세력이 공존했다는 점과 가야의 유력 세력이라 할 수 있는 가라국(대가야)를 포함한 가야 제세력의 성장에 대한 구체적인 실체를 밝혀낸 점 등도 중요한 성과이다. 특히 동아시아의 기항지로 번영을 누렸던 가락국(금관가야)이 삼국이 추구했던 통합을 왜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져보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주요 전시품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목인 “가야본성加耶本性”은 이번 특별전이 추구하고 있는 기본 내용이며, 부제인 칼과 현은 가야의 존재 방식이었던 공존과 공존을 지킬 수 있었던 힘을 상징한다. 전시의 중심내용은 Ⅰ∼Ⅳ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공존, 화합, 힘, 번영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프롤로그는 가야의 건국과정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가야의 건국은 신화와 설화의 형태로 전승되고 있어 아직은 역사의 일부로 자리잡고 있지는 못하다. 남해안의 어느 바닷가에서 이루어진 수로와 허왕옥의 만남은 단지 신화와 설화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역사의 일부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를 제공한다.

1부 공존은 가야의 존재 방식인 공존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가야가 추구한 공존은 여러 사서의 기록에도 잘 남아있지만 물질자료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공존했던 가야는 다양한 양식의 토기와 독특한 상형토기를 만들었고, 여러 이웃 나라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면서 교류했으며, 독자적인 대외관계를 유지했다.

최근 창원 현동과 함안 말이산 무덤에서 출토된 각종 상형토기를 비롯하여 가야 지역에서 출토된 중국을 비롯한 북방유목민, 왜, 신라, 백제, 고구려 등과 교류하였음을 보여주는 각종 유물이 전시된다. 특히 다양한 가야 토기로 만든 높이 3.5m의 ‘가야토기탑’은 관람객들이 공존의 가야를 감성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할 것이다.

2부 화합에서는 호남 동부의 남원, 순천 지역의 세력을 규합한 가야가 중국에 사신을 파견하여 위상을 새롭게 하고 우륵의 가야금 12곡을 만들어 화합을 도모했음을 조명했다. 호남지역에서 새로이 소개된 가야 유적과 유물이 전시되며, 고령 지산동고분 금동관(보물 2028호) 등 대가야의 위상을 보여주는 각종 금동장식품과 위세품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특별전 3부의 주제는 ‘힘’이다. 부제의‘칼’이 상징하는 철의 나라 가야의 힘을 여실이 보여주는 국보 275호 말 탄 무사모양 뿔잔과 철갑옷, 말갑옷, 각종 무구류를 전시하고 가야의 제철 기술을 소개한다. 그리고 사실적이면서도 새로운 디지인의 ‘가야 무사상’을 배치하여 가야를 지켜 온 중갑기병들을 생생히 볼 수 있도록 하였다.

4부는 4세기대까지 번영했던 가락국(금관가야)이 왜 주변의 여러 나라를 통합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것에서 출발한다. 중국-한반도-일본을 잇는 동북아 교역의 중심인 가야에 여러 나라의 사신과 사람들이 왕래하면서 철과 여러 특산물을 교역한 모습을‘번영’이라는 핵심어로 전시하였다. 변한 시기부터 국제적인 교역망을 건설한 가야의 모습을 김해 대성동 고분 등에서 출토된 각종 교역품으로 보여준다. 창원 현동에서 출토된 배모양 토기는 당시 국제항로를 다니던 외항선 모습으로 가야인들의 해상 교역을 증명한다.

마지막으로 에필로그는 가야는 망했지만 가야의 유산을 안고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 즉 가야의 디아스포라를 이야기한다. 최근 동해 추암동에서 출토된 가야 토기들은 가야 멸망 후 신라 영역이었던 강원 동해 지역까지 옮겨가 살아야 했던 가야인의 디아스포라[Diaspora]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우리에게 가장 알려진 디아스포라는 가야의 가치를 간직한 가야금이라 할 수 있다. 가야금은 가야의 공존과 화합의 가치를 잘 담고 있고 있기 때문이다. 가야의 화합은 가야가 망하면서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화합을 노래한 가야금 음악은 현재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주요 전시품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사진=국립중앙박물관

가야의 여러 작은 나라들은 저마다의 자연발생적 조건들을 존중하면서 520여년을 이웃으로 공존해왔다. 가야는 강자의 패권으로 전체를 통합하지 않았고, 언어와 문화의 바탕을 공유하면서 각국의 개별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이것이 가야가 역사 속에서 존재하는 방식이었고, 멸망의 원인이었다. 가야는 중앙집권체제를 갖추었던 신라에 병합되어서 민족사로 편입되었다. 가야의 운명은 국가란 무엇이고 평화란 무엇인지에 대하여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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