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국경일 집회 노리는 당신, 이게 보수냐
[기자수첩] 국경일 집회 노리는 당신, 이게 보수냐
  • 오세영 기자
  • 승인 2020.10.09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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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즈경제 산업부 오세영 기자
와이즈경제 산업부 오세영 기자

"말은 민족의 정신이며 글은 민족의 생명이다." 한글날이면 떠오르는 영화 '말모이'에서 가장 인상깊은 대사다.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말 사용이 금지되자 조선어학회는 일본의 눈을 피해 몰래 사전을 만들기 시작한다. 전국 각지의 우리말을 모은다는 의미로 시작된 '말모이' 작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목숨까지도 바친다. 일본의 고문도, 친일파 아버지의 강압도 조선어학회를 꺽지 못했다. 한글은 그들이 지켜야 할 가치였기 때문이다.

훈민정음 창제를 기리고 그 우수성을 기념하는 '한글날'은 우리나라 5대 국경일 중 하나다.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해 독립 의사를 세계에 알린 3월 1일을 기념하는 '삼일절'과 대한민국 헌법 공포를 기념하는 '제헌절', 일제강점기 해방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축하하는 '광복절', 최초의 민족국가인 단군조선 건국을 기리는 '개천절'과 함께 나라의 경사스러운 날이다. 국경일은 그 동안 우리가 지켜냈고 앞으로도 지켜야 할 게 무엇인지를 상기시켜주는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들어 국경일을 바라보는 시각이 부정적으로 변했다. 지난 8월 15일 광복절, 전광훈 목사와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랑제일교회 신자들, 자칭 '보수세력'들이 대규모 집회를 열기 시작하면서다. 이날 광복절 대규모 집회는 거리두기와 위생수칙을 무시한 채 진행됐다. 이후 국내 코로나19 확진자는 38일 동안 세 자릿수 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에서는 거리두기 단계가 2.5단계로 강화돼 다수의 자영업자들이 강제 휴업 기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 동안 코로나19를 잠재우려던 모두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는 동시에 모든 국민들의 안전이 위협받는 시기였다. 해방을 기념하는 날인데 국민들의 생명과 생계가 위태로워졌다.

꿋꿋하게도 자칭 '보수세력'들이 개천절과 한글날에도 집회를 진행하겠다는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국민들은 국경일마다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다. 광복절 이후 개천절과 한글날 등 국경일이 '집회가능날'로 통하고 있다. 국경일이 다가올 때마다 국민들의 관심은 집회 진행 여부로 쏠리고 있다. 언론에서는 국경일에 신고된 집회가 몇 개인지 파악하기 바쁘고 법원에서는 집회 허용여부를 판단하기 바쁘다. 경찰들은 광화문 광장 일대에 차벽을 설치하는 등 사방을 주시하느라 정신이 없다.

비단 국경일 뿐만이 아니다. 국기에 대한 의미도 변질된 지 오래다. 몇 년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고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에 태극기 물결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대한민국 국기인 태극기는 특정 세력 혹은 세대층을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로 자리잡고 있다. 나아가 자신과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고집불통을 묘사할 때도 '태극기' 한 마디면 된다. 대한민국 국기인 '태극기'는 특정세력 혹은 불통을 상징하는 단어로, 대한민국 경사날인 국경일은 '태극기 부대가 모이는 날'로 훼손됐다.

자칭 '보수세력'이라 주장하며 태극기를 들고 국경일에 모이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모든 국민들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하면서 지키려는 게 무엇이냐고 말이다. 그들이 지키려는 게 정말 국가와 국민인가 아니면 단순히 자신들만의 신념인가. 영화 '말모이'에서 조선어학회가 목숨걸고 지킨 건 민족의 정신이자 민족의 생명이다. 자신들의 신념만을 지키려고 다른 국민들의 목숨을 위협하지도 않는다. '보수'란 전통적 가치를 지키고 옹호한다는 뜻이다.

진정한 보수라면 국기와 국경일을 이용하지 않고 그 가치를 지키려 나섰을 거다. 또 자신들의 종교·신념·의견의 자유를 외치면서 타인의 생명을 위협할 수는 없다. 내가 가진 가치가 목숨걸고 지켜야 할 것이라면 타인의 가치 또한 소중한 법이다. '이게 나라냐'고 울부짖으며 태극기를 들고 광복절에 모인 이들은 국기와 국경일은 물론 자유에 대한 가치조차 훼손해버렸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이게 보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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