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의, ‘동일인 지정제도 개선과제 건의’ 4대 분야 8개 과제 정부에 제출

[와이즈경제=김민정기자] 그룹 총수가 누구인지를 정부가 지정하는 `동일인 지정제도'와 관련하여 정부가 `동일인 판단기준 및 확인절차 지침 제정안'을 발표한 가운데 경제계가 대폭적인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9일 발표한 `동일인 지정제도 개선과제 건의서'를 통해 “1986년 기업집단 규제와 함께 도입된 동일인 지정제도는 단지 기업의 규모를 이유로 제재하는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인데 40년 가까이 묵은 규제 틀을 고수하면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며 “동일인 지정제도가 현 시대에도 경제발전에 도움되는지 살펴보고 변화된 환경에 따라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규제를 합리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진=대한상의 영상 캡처
사진=대한상의 영상 캡처

정부는 지난 6월말부터 이달 20일까지 관련 지침 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지침안은 동일인 판단기준, 동일인 변경, 동일인 확인절차 등을 새로 정하고 있으나, 대한상의는 더 나아가 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상의는 지난 6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기업들과 릴레이 간담회를 개최하고 현행 동일인 지정제도와 공정위가 마련중인 `동일인 판단기준 및 확인절차 지침안'에 대한 문제점과 애로사항 등 기업 의견을 수렴하여 동 건의서를 작성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건의서에는 동일인 지정, 동일인관련자 범위, 과도한 형벌조항, 공정위 지침(안) 등 4대 분야에서 8건의 개선과제를 담았다.

먼저 동일인 지정과 관련하여 기업들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동일인 명칭을 변경하고, 법률에 정의규정과 지정절차 위임조항을 마련해줄 것을 건의했다.

상의는 1986년 동일인 명칭을 처음 사용하던 당시에는 그룹 총수가 여러 기업의 CEO를 맡고 있어 동일인 명칭이 현실에 부합하였으나, 지금은 그룹 총수가 2개 이상 기업의 CEO를 맡는 경우가 흔치 않고 대부분 기업들이 전문경영인 체제를 갖추고 있는 만큼 현실과 괴리가 큰 동일인 명칭부터 변경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동일인'이라는 용어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개념인데, 국내법령 중에서 공정거래법, 은행법, 금융지주회사법 등에서만 규정하고 있다. 은행법의 경우 1982년 처음으로 동일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1994년 동일인 정의규정을 두었으나, 공정거래법은 1986년부터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정의규정이 없는 상태이다.

공정거래법상 동일인은 지정자료 제출 및 공시의무 등을 부담하고, 미이행시 형벌 등 제재를 받지만 법률상 정의규정과 위임조항이 있지 않아 논란이 있었고, 이로 인해 공정위가 기업현실과 무관하게 자의적으로 동일인을 지정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또한 은행법상 동일인의 개념은 본인뿐만 아니라 특수관계인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공정거래법상 동일인 개념과 달라 기업들의 혼란을 야기한다는 지적도 있다.

동일인을 자연인으로 할 것인지 법인으로 할 것인지도 논란거리다. 그간 공정위는 실무상 기업 의사와 상관없이 자연인을 우선적으로 지정하여 왔고, 현재 행정예고된 지침안에도 자연인을 우선 지정하되 예외적인 경우에만 법인을 지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82개 기업집단 가운데 72개 집단은 자연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되어 있다.

상의는 “도입한 지 한 세대 이상이 지나면서 상속 등에 따른 오너 지분율 희석, 가족에 대한 관념 변화, 상속·경영권 분쟁, IT·온라인유통·게임 등 친족관계와 무관한 지배구조 등장 등으로 인해 동일인의 지배력에 대한 의미가 크게 달라졌다”면서 “동일인을 법인(최상단회사)으로 할 것인지 또는 자연인(총수)으로 할지 기업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상의는 사외이사와 비영리법인 임원은 공정거래법과 다른 법률간의 정합성에 문제가 있는 만큼 동일인관련자 범위에서 제외해줄 것을 건의했다.

사외이사 제도는 IMF 외환위기 이후에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경영진과 최대주주로부터 독립되어 회사 상무에 종사하지 않는 자를 이사회 구성원으로 선임하여 경영진과 최대주주를 견제·감시하기 위해 상법 등에 도입되었다.

그러나 공정거래법은 사외이사를 동일인의 지배력 확장수단으로 보고 사외이사의 지배회사도 동일인관련자에 포함하고 있어 사외이사 제도의 취지를 훼손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과도하게 넓은 동일인관련자 범위 규정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들은 사외이사 선임 Pool이 교수나 관료 출신에 편중되어 있다. 관련 규제가 없는 미국 기업의 경우 CEO 출신 등 다양한 분야의 역량과 경험을 갖춘 인재를 사외이사로 선임하여 경영 투명성 제고와 동시에 기업 경쟁력도 강화할 수 있다.

상의 관계자는 공정위에서 작년말 시행령 개정을 통해 사외이사 지배회사를 동일인관련자 범위에서 원칙적으로 제외하는 Opt-in 방식으로 개선하였으나, 선임 後 사외이사가 설립․인수한 기업은 여전히 계열회사로 편입되도록 남겨두어 사외이사 선임의 특정 직군 쏠림현상이 개선되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 A그룹은 주력사업 분야와 IT기술간 융합을 추진하기 위해 국내 유명 IT기업의 前 부회장인 C에게 사외이사 자리를 제안하였다. 그런데 퇴직 후 전직 임원들과 함께 IT 컨설팅회사 설립을 구상하던 C는 A그룹의 사외이사가 되는 경우 추후 설립하는 컨설팅 회사가 A그룹의 계열편입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복잡한 상황 발생을 꺼리던 C는 고민 끝에 A그룹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비영리법인 임원의 경우 공익법인법 등에서 이사 5명 중 4명 이상을 특수관계인 아닌 자로 선임하도록 제한하고 선임시 감독기관 승인도 얻도록 하는 등 독립성을 갖추도록 하고 있으나, 공정거래법은 비영리법인 임원을 동일인관련자에 원칙적으로 포함하도록 하여 역량과 경험을 갖춘 인사를 임원으로 영입하는데 제약을 받고 있다.

한편 상의는 동일인이 소규모 공익재단에 기부하는 경우 누적 기부금액이 재단 총출연금액의 30%를 넘어 최다출연자가 되면 기업집단에 자동편입되는 규정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공정위는 `총출연금액'의 의미를 모든 출연재산의 누적합산액으로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어 소규모 공익재단에 대한 민간 기부가 위축되고 있는데 이를 `설립시 출연재산'으로 유연하게 해석해 소규모 공익재단에 대한 기부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공정거래법과 같이 특수관계인을 규율하는 국세기본법도 법인에 대한 출연재산의 의미를 `설립을 위한 출연재산'으로 한정하고 있다.

# A그룹 총수 B는 자선 목적으로 총 재산 십억 미만의 소규모 장학재단 십여 곳에 매년 수억에서 수십억원씩 기부하고 있다. 그런데 몇 년 새 B의 기부금액이 각 재단 재산의 30%를 초과해 동일인관련자 및 계열편입 대상이 되었다. 각 재단은 적은 운용인력에 어려움을 느꼈고 총수와 그 동일인관련자가 지배하지 않기에 동일인관련자 제외를 위해 채무보증‧자금대차 확인서, 계열회사와의 거래내역 확인서, 감사보고서 등 다수의 자료를 제출하여 제외되었다. 그러나 제외 이후에도 사후점검으로 매년 동일한 자료를 제출하고 있다. 각 재단의 사정과 계열편입‧제외에 부담을 느낀 총수 B는 소규모 재단에 대한 기부를 잠정 중단했다.

아울러 상의는 기업집단 지정자료 제출과 관련하여 법조문상 법인에게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일인에게 자료제출을 요구하고 미제출의 경우 형벌을 부과하는 현행 방식을 개선해줄 것을 요청했다. 강제권한이 없는 동일인에게 친족의 자료까지 요구하고 친족이 거절하면 동일인을 처벌하는 것은 형벌의 책임주의 원칙에 반할 뿐더러 행정벌로 충분한데 형벌을 부과해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밖에 공정위가 행정예고 중인 `동일인 판단기준 및 확인절차 지침안'에 대해 불명확한 `주요 경영사항' 문구 구체화, 동일인 변경시 기업집단 범위 변경절차 추가 등을 요청했다.

이수원 대한상의 기업정책팀장은 “제도를 도입한 70~80년대는 창업 1세대가 급속성장하는 과정에서 국내시장의 경제력집중을 경계했던 시기라면, 한 세대 이상이 지난 지금은 세계시장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다투는 시대”라면서 “동일인 지정제도가 우리 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가 되지 않도록 예측가능성과 기업 수용성을 고려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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